2026년 7월 29일 수요일오늘의 뉴스

함께 타는 배, 함께 걷는 길

장애 없이 열려 있는 관광지가 보여주는 환대처럼, 주님은 우리 모두를 한 배에 태워 주시고 아무도 문 앞에서 돌려보내지 않으십니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행복하여라, 그들이 너를 갚을 수 없으니!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루카 14,13-14

그때에 눈먼 이들의 눈이 밝아지고 귀먹은 이들의 귀가 열리리라. 그때에 다리저는 이가 사슴처럼 뛰고 말못하는 이의 혀가 환성을 터뜨리리라.

이사야 35,5-6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마태오 11,28

오늘 한 신문에 ‘매번 입밴 당한 카누, 휠체어도 탈 수 있네’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무장애 열린관광지를 찾아가 보니, 예전에는 입장이 거절되던 카누가 이제는 휠체어를 탄 분들도 함께 물 위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계단 대신 경사로가, 좁은 문 대신 넓은 진입로가 마련되고, 눈으로만 바라보던 풍경이 이제는 손으로, 몸으로 만져질 수 있게 된 곳. 그저 관광 시설 하나 바뀐 일이 아니라, 누군가의 하루가 처음으로 ‘초대’를 받은 순간처럼 느껴집니다.

많은 분들이 오랫동안 문 앞에서 발길을 돌리셔야 했을 것입니다. ‘여기는 안 됩니다’, ‘위험합니다’, ‘다음에…’라는 말 앞에서 마음이 얼마나 무거웠을까요. 그 거절의 무게를 주님께서는 잘 아십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잔치를 베풀 때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갚을 수 없는 이들을 먼저 자리에 앉히라는 권고는, 단순한 친절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식탁이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 줍니다. 아무도 문밖에 세워 두지 않는 잔치. 그 잔치가 오늘 작은 관광지에서 조금씩 현실이 되고 있는 듯합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눈먼 이의 눈이 밝아지고, 다리저는 이가 사슴처럼 뛰는 날을 노래합니다. 그것은 먼 미래의 기적만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손길이 길을 열고, 누군가의 배려가 배를 준비할 때, 그 약속은 이미 우리 가운데서 시작됩니다. 휠체어가 카누에 오르는 장면은 단지 편의시설의 개선이 아니라, ‘너도 함께 갈 수 있다’는 사랑의 선언입니다. 가톨릭 사회교리가 말하는 인간 존엄과 연대가 바로 이런 구체적 자리에서 피어납니다.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고, 그 존엄은 장애의 유무로 나뉘지 않습니다.

혹시 요즘 마음이 많이 지치셨다면, 이 소식을 들으며 잠시 숨을 고르셔도 좋습니다. 주님께서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하고 부르십니다. 우리의 한계와 아픔을 숨기지 않아도 됩니다. 그분은 우리를 문 앞에서 돌려보내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당신 옆에 자리를 내어 주시고, 함께 배를 타자고 손을 내미십니다. 마리아께서 가브리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하고 신뢰하셨듯이, 우리도 오늘 작은 열린 문 앞에서 희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무장애 관광지가 늘어난다는 소식은 우리 사회의 따뜻한 숨결입니다. 그러나 더 깊은 곳은 우리 마음입니다. 가정에서, 본당에서, 거리에서 누군가의 ‘입밴’을 거두는 일. 그 일은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함께 가시지요” 하는 한마디에서 시작됩니다. 주님께서 이미 우리를 초대하셨으니, 우리도 서로를 그 식탁으로 안내하면 됩니다. 물 위에 떠 있는 작은 카누처럼, 우리의 하루도 서로가 기대어 흔들리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두려워 마십시오. 그분께서 함께 타 계십니다.

기도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 문 앞에서 머뭇거리는 이들과 무거운 짐을 진 이들에게 당신 아드님의 손길을 보내 주소서. 장애 없이 열려 있는 마음과 길을 우리에게 허락하시어, 모두가 한 식탁과 한 배에 오르게 하소서. 성모 마리아의 신뢰로 오늘도 희망을 품고 서로를 초대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오늘의 말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