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21일 화요일

혀의 상처와 용서의 치유

뼈아픈 말은 깊은 상처를 남기지만, 하느님의 자비를 닮은 진실한 회개와 용서는 치유와 새로운 시작의 길을 엽니다.

우리는 그 혀로 주님이신 아버지를 찬양하는가 하면 바로 그 혀로 하느님의 모습을 따라 창조된 사람들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한 입에서 찬양과 저주가 함께 나오고 있습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야고보서 3:9-10

온갖 악의와 분노와 격정과 폭언과 비방을 모든 악의와 함께 내어버리십시오. 서로 친절하게 대하며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같이 서로 용서하십시오.

에페소서 4:31-32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젊은 학생 선수들의 이야기에서 마음 아픈 소식을 접합니다. 한 야구팀의 선수들이 다른 팀 선수들을 향해 지역의 아픈 역사를 조롱하며 깊은 상처를 주는 말을 내뱉었다고 합니다. 그 말들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공동체를 가르고 한 영혼에 깊은 슬픔을 새기는 칼날과도 같았습니다.

말은 보이지 않는 돌과 같습니다. 한번 던져지면 깊은 상처를 남기고, 그 파문은 오래도록 가라앉지 않습니다. 우리의 교부들, 특히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스께서는 혀의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거듭 경고하셨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상기시킵니다. “우리는 그 혀로 주님이신 아버지를 찬양하는가 하면 바로 그 혀로 하느님의 모습을 따라 창조된 사람들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형상을 지닌 형제를 향한 저주는 곧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향한 모욕과 같습니다. 한 입에서 어찌 찬양과 저주가 함께 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어둡고 안타까운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복음의 작은 빛을 발견합니다. 잘못을 저지른 학생들이 진심으로 사과했고, 상처 입은 이들이 그 사과를 받아들여 용서했다는 소식입니다. 정교회 전통에서 회개, 즉 '메타노이아'는 단순히 후회하는 것을 넘어 마음과 삶의 방향을 온전히 돌이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돌아오는 여정입니다. 학생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한 행위는 바로 이 거룩한 돌이킴의 시작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용서의 행위입니다. 용서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그러하셨듯, 부당한 고통을 기꺼이 품고 상처를 치유의 통로로 변화시키는 신비로운 행위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우리에게 권고합니다. “서로 친절하게 대하며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같이 서로 용서하십시오.”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의 자비를 먼저 받은 자들이기에, 우리 또한 형제를 용서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하느님을 닮아가는 길, 즉 '테오시스'의 여정입니다.

징계가 감경되어 학생들이 다시 경기에 뛸 기회를 얻었다는 것은, 세상의 정의를 넘어선 하느님의 자비를 떠올리게 합니다. 하느님의 뜻은 죄인의 멸망이 아니라, 그가 돌이켜 사는 것에 있습니다. 교회는 언제나 징계를 통해 한 영혼이 치유되고 공동체로 다시 회복되기를 기도합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회복과 새로운 시작이 은총의 핵심임을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 자신의 마음을 돌아봅시다. 우리의 혀는 다른 이에게 생명을 주고 있습니까, 아니면 상처를 주고 있습니까? 우리 마음속에는 용서하지 못한 쓴 뿌리가 남아있지 않습니까? 마음의 기도를 통해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우리의 입술을 정화하고 우리의 마음에 주님의 자비를 채워주시길 간구합시다. 그리하여 우리가 서 있는 모든 곳에서 화해와 평화의 도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오, 자비로우신 주님, 저희의 혀를 지켜주시어 축복과 치유의 말이 되게 하시고, 저희 마음에 용서의 은총을 부어주시어 주님의 평화를 이루는 도구가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