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23일 목요일오늘의 뉴스
보이지 않는 이들의 십자가
희귀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보이지 않는 짐을 통해, 우리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서로의 짐을 함께 지는 것의 의미를 묵상합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태복음 25:40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도다
고린도후서 4:16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갈라디아서 6:2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폐동맥고혈압’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기사를 통해 듣게 됩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환자로 사는 일이 아픈 것보다 더 힘들다”고. 이 한 문장 안에 얼마나 깊은 아픔과 무게가 담겨 있는지요. 육신의 고통을 넘어, ‘환자’라는 이름으로 살아가야 하는 삶의 고단함, 세상의 무관심, 그리고 홀로 감당해야 하는 수많은 싸움들이 느껴져 마음이 저며 옵니다.
우리의 분주한 일상 속에서, 이처럼 보이지 않는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이런 이들을 가리켜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들 안에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드러내십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이웃의 신음 속에, 바로 우리를 기다리시는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곧 우리 곁에 와 계신 주님을 외면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로는 우리에게 깊은 위로와 희망의 신비를 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도다.” 육신이 쇠약해지는 고통은 너무나 현실적이고 아픈 것입니다. 교회는 결코 그 고통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우리는 그 너머를 봅니다. 겉사람이 무너져 내리는 그 자리에서, 하느님의 은총으로 속사람이 날마다 새로워지는 놀라운 역설을 바라봅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톰과 같은 교부들이 가르쳤듯이, 병상에 누운 이는 그리스도의 제단과도 같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영원한 영광을 위한 연단이 이루어짐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고통받는 지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다시 사도 바울로의 권면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서로의 짐을 져주는 것,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법, 곧 사랑의 법을 이루는 길입니다. 짐을 진다는 것은 그저 멀리서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넘어,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존재를 ‘환자’라는 이름 뒤에 가두지 않고,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귀한 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의 짐을 질 때, 우리는 홀로가 아님을 깨닫게 되며, 그 안에서 우리 모두를 품에 안으시는 그리스도의 따스한 위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부디 낙심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기도
자비로우신 주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모든 이들을 긍휼히 여기소서. 그들의 육신과 영혼에 힘을 주시고, 저희에게는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사랑의 마음과 열린 눈을 허락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