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25일 토요일오늘의 뉴스
기계의 침묵 속에 들리는 기도
군산조선소의 비극적인 사고는 가장 작은 이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시며, 모든 생명의 신성함을 보고 기도와 연민으로 응답하라는 부르심을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내가 깊이 탄식하므로 내 살이 뼈에 붙었나이다.
시편 102편 5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태오 복음서 25장 40절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로마서 8장 38-39절
오늘도 조선소의 하루는 거대한 강철 소음과 함께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비극적인 사고 소식과 함께, 그 모든 소음은 한 젊은 노동자의 생명 앞에서 무거운 침묵으로 바뀌었습니다. 언론은 군산조선소에서 서른 살의 한 하청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숨졌다고 간결하게 전합니다. 이 차가운 사실 뒤에는, 한 사람의 삶, 그의 가족, 그리고 우리가 미처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의 세계가 있습니다.
이 침묵은 시편 기자의 고통스러운 탄식과도 같습니다. “내가 깊이 탄식하므로 내 살이 뼈에 붙었나이다.” 가족과 동료들의 마음에 남았을 충격과 슬픔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신음일 것입니다. 우리 정교회는 이처럼 말문이 막히는 슬픔 속에서도 하느님께서 함께 계신다고 믿습니다. 주님께서는 슬퍼하는 이들과 함께 우시며, 우리의 가장 깊은 고통의 순간에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거대한 조직과 복잡한 계약 관계 속에서, 어쩌면 이름조차 제대로 불리지 못했을 그 젊은 노동자는 세상의 눈으로는 ‘작은 자’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눈에는, 바로 그리스도께서 자신과 동일시하신 존귀한 형제였습니다. 그의 비극적인 죽음은, 무관심과 효율성의 논리 속에 상처 입으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교부들은 노동이 저주가 아니라,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동참하는 거룩한 길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성 대 바실리오 성인께서 병원을 세워 아픈 이들을 돌보셨듯,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이웃에 대한 구체적인 돌봄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일터가 생명을 앗아가는 장소가 될 때, 우리 모두는 깊은 회개(메타노이아)로 부름받습니다. 이는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방향을 다시 하느님께로 돌이키기 위함입니다. 이윤과 생산성보다 하느님의 살아있는 이콘인 한 사람의 생명을 진정으로 귀하게 여겼는지 우리 자신에게 묻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무의미해 보이는 죽음 앞에서 우리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로는 우리에게 흔들리지 않는 희망을 선포합니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이 갑작스러운 죽음이 마지막 말이 아닙니다. 만물을 감싸 안으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이제 그 젊은 영혼을 품에 안으셨음을 믿습니다. 죽음은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영혼의 빛을 결코 끌 수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잠시 일손을 멈추고, 세상의 소음 속에서 침묵을 지킵시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기도합시다. 하느님께서 그 이름을 아시는 주님의 종, 이 젊은 노동자의 영혼이 안식을 얻도록 기도합시다. 슬픔에 잠긴 그의 가족들을 성령께서 위로해 주시기를, 그리고 땀 흘려 일하는 모든 이들의 매일이 안전하기를 기도합시다. 우리에게 모든 노동자의 얼굴에서 그리스도를 볼 수 있는 눈을 허락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시다.
기도
오, 주님,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난 주님의 종을 기억하소서. 그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당신의 빛나는 얼굴 앞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하소서. 슬픔에 잠긴 그의 가족들을 위로하시고, 땀 흘려 일하는 모든 이들을 당신의 자비로운 손으로 지켜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