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29일 수요일오늘의 뉴스

장애 없는 은총의 물결 위에서

휠체어로도 카누를 탈 수 있게 된 열린 관광지 소식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이에게 길을 여시고 창조의 아름다움 속으로 우리를 초대하시는 자비의 표징임을 일깨워 줍니다.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이사야 35:5-6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때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누가복음 14:13-14

여호와께서는 넘어지는 모든 자를 붙드시며 비굴한 자를 일으키시는도다

시편 145:14 (144:14)

오늘 한 신문에 이런 따뜻한 소식이 실렸습니다. 예전에 번번이 ‘입밴’을 당하던 카누가, 이제는 휠체어를 탄 이들도 함께 탈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무장애 열린관광지로 지정된 곳에서, 물 위에 떠서 바람을 느끼고 풍경을 바라보는 기쁨이 더는 일부의 특권이 아니라는 소식이지요. 오랫동안 문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던 이들에게, 드디어 길이 열린 것입니다.

우리는 이 소식을 들으며 마음에 잔잔한 기쁨과 함께 조용한 아픔도 느낍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이 ‘여기는 당신 자리가 없다’는 말 없는 장벽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했을까요. 창조의 아름다움—물결의 속삭임, 숲의 향기, 하늘의 빛—을 함께 나누고 싶어도 몸이 닿지 못해 멀리서만 바라보아야 했던 이들의 한숨이 떠오릅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한숨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메시아의 시대를 보며 노래했습니다. 저는 자가 사슴처럼 뛰고, 광야에 물이 솟아난다고. 이것은 단순한 육체의 치유만이 아닙니다. 모든 장벽이 무너지고, 하느님의 자비가 흐르는 강처럼 우리 가운데 임하는 모습입니다. 오늘 카누에 오른 휠체어는 그 예언의 작은 성취처럼 보입니다. 물이 솟아 흐르는 광야처럼, 닫혀 있던 자리가 열리고 기쁨이 흘러넘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잔치를 베풀 때 몸 불편한 이들과 저는 자들을 청하라고 하셨습니다. 갚을 것이 없는 이들을 초대하는 마음이 바로 하느님 나라의 마음입니다. 교회는 언제나 그 잔치의 식탁이 되고자 했습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톰은 가난한 이와 병든 이 안에서 그리스도를 뵈라고 가르쳤고, 사막의 교부들은 약한 형제를 섬기는 것이 곧 하느님을 섬기는 길이라 했습니다. 무장애 관광지에서 함께 노를 젓는 모습은, 우리가 서로를 위해 길을 닦아 주는 작은 성찬의 예표입니다.

하느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모든 사람은 테오시스의 여정, 곧 하느님을 닮아 가는 길에 초대받았습니다. 그 길에 장애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창조 세계는 거룩한 이콘과 같아서, 그 아름다움 앞에서 누구든 무릎 꿇고 경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휠체어가 카누에 오르는 순간, 우리는 주님께서 넘어진 자를 붙드시고 비굴한 자를 일으키신다는 시편의 약속을 눈으로 봅니다.

사랑하는 이여, 혹시 당신도 어떤 문 앞에서 거절당한 아픔을 품고 있다면, 오늘 이 소식을 통해 주님께서 가까이 계심을 느끼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당신의 자리를 마련하고 계십니다. 물 위에 떠서 하늘을 바라보듯, 그분의 자비 위에 자신을 맡기십시오. 길이 열릴 것입니다. 함께 노를 저을 형제자매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서로가 서로의 다리가 되고, 서로의 눈이 되어 줍니다.

이 작은 열린 문 앞에서 감사합시다. 그리고 우리 일상에서도 누군가를 위해 턱을 낮추고, 손을 내밀고, 자리를 넓히는 일로 응답합시다. 그것이 바로 회개요, 생명으로 돌아가는 길이며, 하느님의 아름다움이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기도

자비로우신 주 예수 그리스도님, 넘어지는 자를 붙드시고 모든 이에게 길을 여시는 분이시여. 오늘 열린 관광지의 물결처럼 저희 마음에도 장애 없는 사랑을 흘려 보내 주시고, 서로를 환대하며 창조의 아름다움 안에서 당신 얼굴을 뵙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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