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요일오늘의 뉴스
가장 늦게 불리는 이름 앞에서
송경용 신임 이사장의 취임 소식을 통해, 세상이 가장 늦게 부르는 노동자들을 먼저 기억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를 나눕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더라
창세기 1:27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이 형제 중 가장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니라
마태복음 25:4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28
이번 주 한겨레 기사에는 조용하지만 마음에 오래 남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성공회 송경용 신부가 제14대 전태일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하며, 플랫폼 노동자와 비정규직, 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이들, 곧 '오늘의 전태일들'의 목소리를 사회에 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취임사에서 "가장 늦게 호명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가장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읽으며 저는 우리 주변에서 이름이 가장 늦게 불리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새벽에 배달을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 계약이 갱신될지 불안해하며 하루를 버티는 사람, 기술이 바뀔 때마다 자신의 자리가 흔들린다고 느끼는 사람들 말입니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으며 '나도 늘 뒤로 밀려 있다'고 느끼고 계신다면, 먼저 이 말씀부터 전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가치는 당신의 생산성이나 직함, 시장에서의 위치로 매겨지지 않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분명히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더라"(창세기 1:27). 사람의 존엄은 우리가 무엇을 얼마나 생산하느냐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겨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존엄은 빼앗을 수도, 시장의 계산대에서 값을 매길 수도 없습니다. 송경용 이사장이 "인간의 존엄성은 생산이나 경쟁력, 노동시장에서의 지위로 결정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 창조의 진리와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하루 지친 몸으로 일을 마쳤다면, 그 수고가 우리의 가치를 증명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일의 성과보다 먼저 우리를 자녀로 지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진리를 더 깊은 자리에서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은 심판의 날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이 형제 중 가장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니라"(마태복음 25:40). 주님은 가장 작고 약한 이웃과 자신을 하나로 묶으셨습니다. 그러니 세상이 가장 늦게 부르는 이름이야말로 하나님이 가장 먼저 기억하시는 이름인 셈입니다. 전태일이 세상을 떠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의 외침이 여전히 살아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그 외침은 고용 형태가 아무리 복잡해져도 사람을 사람답게 대우하라는 가장 상식적인 부르짖음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외침을 과거의 기억으로만 붙들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곁의 가장 작은 이웃에게 손을 내미는 일로 이어 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현실의 무게가 가볍다고 말할 수는 없겠습니다. 기사에는 타워크레인 설치와 해체 작업 중 노동자가 숨진 사고에 항의하며 단식 농성을 이어 가는 노동자의 이야기도 함께 실려 있습니다. 국회의원 우원식 의원은 "일하는 사람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는 전태일의 50여년 전과 다를 바가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억울함과 피로가 쌓여 마음이 무너지는 분들이 분명 우리 곁에 계십니다. 그런 분들께 "힘내십시오"라는 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주님의 초대를 다시 들어 보십시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 주님은 짐을 내려놓으라고 명령하시기에 앞서, 먼저 우리를 부르십니다. 지친 사람을 가장 먼저 품으시는 분이 바로 우리 주님입니다. 지금 힘겨운 싸움을 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그 싸움의 자리에서도 주님이 함께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거창한 일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이번 주에 한 번쯤 주변에서 목소리가 작아 쉽게 지나치게 되는 사람을 떠올려 보십시오. 경비 노동자, 택배 기사, 식당에서 일하는 청년, 계약직으로 일하는 동료에게 안부를 물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기술과 효율이 앞서 가는 시대일수록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일이 더 귀해집니다. 송경용 이사장이 청년들이 전태일을 '먼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함께 길을 찾는 동료로 만나기를 바란다고 말한 것처럼, 우리도 우리 자녀와 젊은 이웃들에게 일의 존엄을 함께 고민하는 어른이 되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경청과 기도가 누군가에게는 하나님이 보내신 위로의 첫 음성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우리의 이름을 가장 먼저 기억하시는 하나님 앞에 함께 서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를 늦게 부르거나 아예 잊을 때가 있지만, 주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지친 어깨를 조금 내려놓고, 주님의 품에서 잠시 숨을 고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가장 늦게 호명되는 이웃들을 위해 오늘 한 번 더 기도해 주십시오. 하나님은 그 기도를 결코 헛되이 여기지 않으실 것입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세상이 가장 늦게 부르는 이름들을 주님은 가장 먼저 기억하신다는 것을 감사드립니다. 지치고 억울한 노동자들과 그 곁을 지키는 이웃들에게 주님의 위로와 쉼을 허락하시고, 정의가 흐르는 자리를 넓혀 주소서. 우리도 작은 이웃의 목소리에 먼저 귀 기울이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