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8일 수요일오늘의 뉴스

보이지 않던 자리에 놓인 다리

신용이 낮은 청년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손을 내민 작은 금융의 사랑을 통해, 고아와 외로운 이를 끝까지 돌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함께 바라봅니다.

고아의 아버지요 과부의 재판장은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시신 하나님이시로다 하나님은 독처하는 자를 가정에 거하게 하시며 갇힌 자를 이끌어 형통하게 하시나 반역하는 자는 메마른 땅에 거하게 하시는도다

시편 68:5-6

내 부모는 나를 버릴지라도 여호와께서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시편 27:10

너희가 서로 짐을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이루라

갈라디아서 6:2

오늘 아침 한 기사를 천천히 읽었습니다. 경기 성남의 한 주민신협 본점 건물에 입점해 있는 작은 햄버거 가게 이야기였습니다. 가게를 운영하는 백보현 씨는 위탁가정에서 자랐고, 가정위탁 보호가 끝난 뒤 5년이 지났다고 합니다. 그는 이제 자신이 자립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짧은 고백 속에는 아마 우리가 짐작하기 어려운 긴 밤들이 담겨 있었을 것입니다. 부모 없이 자라며 누군가의 집에 머무는 일, 그 집을 떠나 스스로 서야 하는 일, 그리고 신용이 낮다는 이유로 문 앞에서 번번이 돌아서야 했을 시간들 말입니다. 그런 청년에게 이 신협은 돈을 빌려주는 곳이기 전에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준 자리였다고 기사는 전합니다. 0.3%의 간접배당이라는 이름도 낯설었지만, 그 안에는 누군가의 실패를 나의 책임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이 담겨 있었을 것입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이런 사람들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시편 68편은 하나님을 "고아의 아버지요 과부의 재판장"이라 부릅니다. 세상이 이름조차 기억하지 않는 사람들의 아버지가 되어 주신다는 고백입니다. 그리고 6절에서는 하나님이 "독처하는 자를 가정에 거하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외롭게 홀로 선 사람을 다시 공동체 안으로 데려오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하나님의 일은 거창한 기적이나 하늘의 큰 사건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시편은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자주 사람의 손을 통해 흘러간다고 가르칩니다. 신협의 직원들이 장부를 넘기며 한 사람의 가능성을 믿어 준 순간, 거기에 하나님의 마음이 함께 있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다윗은 시편 27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릴지라도 여호와께서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이 고백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버림받았던 사람의 목소리처럼 들립니다. 백보현 씨가 겪었을 상처와 그 상처를 견디며 살아온 세월이 이 문장 안에 조용히 겹쳐 보입니다. 만약 지금 여러분 마음에도 누군가에게 버려진 듯한 아픔이 있다면, 먼저 이 말씀을 붙들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영접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영접은 우리가 잘해서 얻는 상이 아니라, 아버지가 자녀를 품는 것처럼 먼저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 내가 얼마나 흔들리고 있는지 숨기지 말고 하나님 앞에 그대로 내려놓아도 괜찮습니다.

그렇다고 이 은혜가 우리를 방관자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갈라디아서 6장 2절은 "너희가 서로 짐을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이루라"고 권면합니다. 짐을 나누는 일은 거창한 결단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대개는 작은 관심, 한 번의 기다림, 상대의 형편을 묻는 한마디에서 시작됩니다. 신협이 이 청년의 가게를 세우는 데 도움을 준 것도, 결국 그의 짐을 함께 지기로 한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아직 자기 힘으로 일어서는 중인 누군가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 사람을 위해 오늘 기도하고, 작은 도움이 필요한지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법을 조금씩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또 하나 마음에 남는 것은 기사 제목에 등장한 "의료 공백을 막아냈다"는 이야기입니다. 몸이 아프고 돈이 없어 치료를 미루는 일은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무겁고 외로운 시간입니다. 그 공백을 메우려는 노력 역시 누군가의 삶을 지키는 일입니다. 성경은 우리 몸을 성령의 전으로 묘사하며, 고난 중의 사람을 돌보는 일을 하나님을 섬기는 일로 여기라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직접 큰 기관을 세울 수는 없어도, 아픈 이웃의 이야기를 외면하지 않고 필요한 곳을 알려 주는 것, 병원비 때문에 고민하는 가족의 이름을 기억해 기도하는 것도 분명 의미 있는 사랑의 공백 메우기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붙들어야 할 소망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이시고, 버려진 사람을 영접하시며, 우리를 서로의 짐을 나누는 공동체 안에 두십니다. 백보현 씨가 "자립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길에는 그의 노력도 있었고, 그를 붙들어 준 사람들의 수고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신 분은 결국 우리를 끝까지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하루 누군가에게 짐을 나눌 수 있는 작은 기회가 찾아온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해 놓으시는 다리라고 기억해 주십시오.

기도

고아의 아버지이시며 외로운 자를 가정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세상이 잊은 이들을 여전히 기억하시고 영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홀로 일어서려고 애쓰는 이웃들에게 필요한 도움과 따뜻한 사람들을 붙여 주시고, 저희 역시 짐을 나누는 손이 되게 하여 주소서. 아프고 외로운 이들이 주님의 품에서 다시 힘을 얻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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